RTNDA Convention Speech (1958)
- Speech to the Radio and Television News Directors Association (RTNDA) convention in Chicago (15 October 1958)
- This just might do nobody any good. At the end of this discourse a few people may accuse this reporter of fouling his own comfortable nest, and your organization may be accused of having given hospitality to heretical and even dangerous thoughts. But the elaborate structure of networks, advertising agencies and sponsors will not be shaken or altered. It is my desire, if not my duty, to try to talk to you journeymen with some candor about what is happening to radio and television.
이 연설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강연 말미에 몇몇 사람은 제가 본인의 편안한 둥지를 욕했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고, 여러분의 회사는 이단에 위험하기까지 한 사고에 기회를 주었다고 비난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TV 네트워크와 광고사, 그리고 협찬사들의 정교한 구조는 흔들리거나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라디오와 TV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문가인 여러분들에게 조금은 솔직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더라도, 제 바람입니다.
- I have no technical advice or counsel to offer those of you who labor in this vineyard that produces words and pictures. You will forgive me for not telling you that instruments with which you work are miraculous, that your responsibility is unprecedented or that your aspirations are frequently frustrated. It is not necessary to remind you that the fact that your voice is amplified to the degree where it reaches from one end of the country to the other does not confer upon you greater wisdom or understanding than you possessed when your voice reached only from one end of the bar to the other. All of these things you know.
저에겐 말과 그림을 생산해 내는 이 포도밭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에게 드릴 기술적 조언이나 자문거리가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그 장비가 기적을 만들어 낸다거나, 여러분의 책임이 미증유의 것이라든가 그 포부가 종종 좌절된다는 점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은 양해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이 나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도달할 만큼 증폭된다는 사실이 여러분의 목소리가 바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에 닿을 때 지녔던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이해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상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습니다.
- I have no feud, either with my employers, any sponsors, or with the professional critics of radio and television. But I am seized with an abiding fear regarding what these two instruments are doing to our society, our culture and our heritage.
저는 우리 직원들, 어느 협찬사, 또는 라디오 및 TV 비평가들과 반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매체가 우리 사회, 우리 문화 그리고 우리의 유산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 Our history will be what we make it. And if there are any historians about fifty or a hundred years from now, and there should be preserved the kinescopes for one week of all three networks, they will there find recorded in black and white, or color, evidence of decadence, escapism and insulation from the realities of the world in which we live.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50년 혹은 100년 후에 어느 역사가가 있고, 3개의 방송국(주: 지상파 ABC, CBS, NBC를 말하는 듯)의 1주일치 방송 녹화분이 보관돼 있다면, 그들은 자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퇴폐, 현실 도피 그리고 격리의 증거가 흑백 또는 컬러로 기록이 된 것을 찾을 것입니다.
- During the daily peak viewing periods, television in the main insulates us from the realities of the world in which we live. If this state of affairs continues, we may alter an advertising slogan to read: LOOK NOW, PAY LATER.
For surely we shall pay for using this most powerful instrument of communication to insulate the citizenry from the hard and demanding realities which must be faced if we are to survive. I mean the word survive literally.
하루 중 피크 시청대에 주류 텔레비전은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과 격리를 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계속된다면, 우린 광고 슬로건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보시고, 계산은 나중에.
확실하게도,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시민들을 힘들고 빡빡한 현실들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이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는데 비용을 지불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생존을 뜻합니다.
- I have reason to know, as do many of you, that when the evidence on a controversial subject is fairly and calmly presented, the public recognizes it for what it is--an effort to illuminate rather than to agitate.
여러 분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도 논란이 있는 주제에 대한 증거를 공정하게 차분하게 제시할 경우, 시청자들은 이를 있는 그대로 인식 - 동요시키기 보단 명확히 하기 위한 노력 - 한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 If radio news is to be regarded as a commodity, only acceptable when saleable, then I don't care what you call it — I say it isn't news.
만약 라디오 뉴스가 하나의 생필품으로 간주된다면, 판매 가능할 때에야 수용가능할 것인데, 그렇다면 여러분이 뭐라고 부르든지 상관 없이 저는 그것이 뉴스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 One of the basic troubles with radio and television news is that both instruments have grown up as an incompatible combination of show business, advertising and news. Each of the three is a rather bizarre and demanding profession. And when you get all three under one roof, the dust never settles. The top management of the networks with a few notable exceptions, has been trained in advertising, research, sales or show business. But by the nature of the corporate structure, they also make the final and crucial decisions having to do with news and public affairs. Frequently they have neither the time nor the competence to do this.
라디오 및 텔레비전 뉴스의 기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양 매체가 쇼 비즈니스, 광고와 뉴스의 양립 불가능한 조합으로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세 가지 모두 다소 별나고 빡빡한 직종입니다. 세 가지 모두를 한 지붕 아래 둔다면, 먼지는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방송사 고위 관리자들은 일부 두드러진 예외와 함께, 광고, 리서치, 판매 혹은 쇼 비즈니스 계에서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기업 구조의 특성상, 그들은 뉴스와 홍보에 관련된 최종적이고 중대한 결정 또한 내립니다. 종종 그들은 이를 수행하기 위한 시간이나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 I have said, and I believe, that potentially we have in this country a free enterprise system of radio and television which is superior to any other. But to achieve its promise, it must be both free and enterprising. There is no suggestion here that networks or individual stations should operate as philanthropies. But I can find nothing in the Bill of Rights or in the Communications Act which says that they must increase their net profits each year, lest the Republic collapse.
저는 잠재적으로 우리나라에는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한 라디오 및 TV 분야의 자유 기업 체제가 있다고 말했으며, 또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망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기업적이기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전국(networks) 내지 지역(individual) 방송국이 자선기업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권리장전이나 방송법(Communications Act) 어디에도, 공화국(Republic - 주: 전국/지역 방송국을 이르는 듯)이 붕괴하지 않도록 해마다 순이익을 늘려야 한다는 조항을 찾을 수 없습니다.
- I am frightened by the imbalance, the constant striving to reach the largest possible audience for everything; by the absence of a sustained study of the state of the nation.
저는 불균형, 모든 것에 대해 가능한 최대의 수용자 층에 도달하려 항상 기를 쓰는 것과 미국 각주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가 부족한 점 때문에 놀랐습니다.
- Do not be deluded into believing that the titular heads of the networks control what appears on their networks. They all have better taste. All are responsible to stockholders, and in my experience all are honorable men. But they must schedule what they can sell in the public market.
혹해서 직함 상의 방송국 대표들이 방송국 프로그램에 대해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믿지는 마십시오. 그들 모두에게 더 좋은 취향이 있습니다. 모두가 주주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제 경험상 모두가 명예로운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공공시장에서 팔 수 있는 내용들을 편성해야 합니다.
- The sponsor of an hour's television program is not buying merely the six minutes devoted to commercial message. He is determining, within broad limits, the sum total of the impact of the entire hour. If he always, invariably, reaches for the largest possible audience, then this process of insulation, of escape from reality, will continue to be massively financed, and its apologist will continue to make winsome speeches about giving the public what it wants, or "letting the public decide."
1시간짜리 TV 프로그램 후원사는 단순히 상업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6분을 산 것이 아닙니다. 광의의 범위에서, 후원사는 전체 시간에 대해 미치는 총체적인 영향력을 통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 언제나, 가능한 최대의 수용자에게 도달한다면, 현실과의 격리이자 도피의 이 과정이 계소해서 대단위적으로 재정이 편성될 것이고, 이를 변호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공중이 원하는 것을, 또는 "공중이 결정하게 하도록" 해주는 것에 대해 매력 있는 연설을 할 것입니다.
- If we go on as we are, we are protecting the mind of the American public from any real contact with the menacing world that squeezes in upon us. We are engaged in a great experiment to discover whether a free public opinion can devise and direct methods of managing the affairs of the nation. We may fail. But we are handicapping ourselves needlessly.
만약 우리가 있는 그대로 계속 간다면, 우리는 미국의 공중의 의식을 우리를 향해 죄어드는 위협적인 세상과의 실제 접촉으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여론이 국가의 문제들을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내고 조종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불필요하게 옭아매고 있습니다.
- Just once in a while let us exalt the importance of ideas and information.
그저 가끔 한 번씩이라도 아이디어와 정보의 중요성을 고양하도록 합시다.
- We are currently wealthy, fat, comfortable and complacent. We have currently a built-in allergy to unpleasant or disturbing information. Our mass media reflect this. But unless we get up off our fat surpluses and recognize that television in the main is being used to distract, delude, amuse and insulate us, then television and those who finance it, those who look at it and those who work at it, may see a totally different picture too late.
우린 현재로서는 부유하고, 살이 찌고, 편안하면서도 자기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현재 불쾌하거나 불안한 정보에 대해 내재적으로 기피(allergy)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중매체는 이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청난 과잉을 털고 일어나 주류 언론으러서 TV가 우리의 눈을 돌리고, 현혹시키고, 재미를 주며 우리를 격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다면, TV와 여기에 돈을 대는 사람들, 그것을 보는 사람들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판이한 그림을 너무 늦게 보게 될 것입니다.
- We are to a large extent an imitative society.
우리는 크게 보면 하나의 모조 사회입니다.
- This instrument can teach, it can illuminate; yes, and even it can inspire. But it can do so only to the extent that humans are determined to use it to those ends. Otherwise it's nothing but wires and lights in a box. There is a great and perhaps decisive battle to be fought against ignorance, intolerance and indifference. This weapon of television could be useful.
Stonewall Jackson, who knew something about the use of weapons, is reported to have said, "When war comes, you must draw the sword and throw away the scabbard." The trouble with television is that it is rusting in the scabbard during a battle for survival.
이 도구는 가르칠 수 있습니다. 조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네, 그리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그것을 이런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결심할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상자 안에 든 전선과 전구(wires and lights in a box)일 뿐입니다. 무지, 무관용 그리고 무관심에 대항해 싸워야 할 위대하고 아마도 결정적인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TV라는 이 무기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겁니다.
무기 사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은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이 닥칠 경우, 검을 뽑고 칼집은 버려야 한다"고. TV가 지닌 문제점은 생존을 위한 전투 과정에서 칼집 안에서 녹슬고 있다는 것입니다.
- ...if what I say is responsible, I alone am responsible for the saying of it...
...제가 하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저 혼자만 그렇게 말하는 데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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